유라시아대장정

쏘련의 교육

2014. 8. 11. 21:40 - 유라시아대장정

러시아교육의 자료

Ⅰ. 서 론


러시아는 동경 19도, 서경 169.5도, 북위 44 ~ 82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이다. 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에서 1991년 8월 일부 국가들이 분리, 독립하여 ‘독립국가연합’(CIS)을 형성하였다. 러시아 연방은 CIS내의 독립공화국이고, 러시아 내의 또 다른 자치국들이 있어 러시아 연방공화국이라고 한다. 영역은 북동유럽에서 우랄 지역을 거쳐 아시아 대륙 북부에 위치하는 시베리아, 극동지방에 이른다. 쉽게 말해서 러시아는 지구의 총 육지면적의 1/6에 해당되는 땅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인구는 중국, 인도 다음으로 세계 3위이다. 90년대 들어 경제난, 낙후된 보건수준 등으로 인구 증가율이 감소 추세에 있다. 러시아는 100여 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다. 총 한인의 수는 107,000명으로 나타난다. 앞으로 우리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이런 러시아의 교육개혁은 어떤 식으로 추진되었는지, 또 교육제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교원의 양성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러시아교육의 기본원칙(이념)은 ‘전국민에 균등한 교육제공, 전 교육의 의무교육, 1988년 이후 교육의 다양화와 개별화 및 민주화’이다. 교육제도 변화의 방향은 1988년 교육 개혁에서는 혁명기의 소비에트 교육으로 회 귀하였고, 1991년에는 민주화, 인간화, 개별화, 다양화, 종합화 및 평생교육화를 목표로 하였으며, 현재 러시아의 교육의 2대 목표는 교육의 다양화와 개별화 및 민주화이다. 지금까지는 러시아의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 러시아라는 국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교육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이제부터 러시아의 교육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본 론


1. 러시아의 교육 개혁


(1) 교육 개혁의 사적 배경

교육에 관한 한 혁명 전 러시아는 유럽에서 가장 후진 국가 중의 하나였다. 1917년의 사회주의 대혁명 전까지만 해도 전(全)학령아의 4/5는 취학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취학 아동들도 대부분 초등교육을 받는 것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로 인해 소련은 교육문화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레닌이 정권을 잡자 곧 국민교육제도의 전적인 재편성이 시작되었다.  교육은 사회주의 건설의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에 혁명정부는 교육을 건설과 함께 대단히 중요시하였다. 1917년 11월에 벌써 국가교육제도위원회가 창설되어, 긴급히 해결해야 할 교육과제로서 문맹의 근절, 통일된 세속학교의 건설, 교육제도의 민주화, 교사 대우의 개선 등을 호소하였다.


소련의 국민교육체계가 최초로 확립된 것은 1918년 10월 16일에 공포된 ‘노동학교령’(The Decree on the Unified Labour School)이었다. 1923년 ~ 24년에는 새로운 교육과정이 도입되었는데, 이것의 주요한 목표는 사회주의 세계관의 형성, 정치 및 사회적 지식의 확충 노동과 사회생활에 대한 깊은 지식의 습득, 자연의 제 현상의 법칙성에 대한 이해였다. 레닌이 인도한 1920년대의 교육방법은 진보적이고 아동 중심적이었다. 종전의 주입식 학습이 맹렬히 비판되고, 따라서 교사 중심적 또는 권위주의적 교육방법은 그 자취를 감추었다. 학생들은 교사를 비판하는 자유는 물론, 지도 받고 싶은 교사를 초빙하는 권한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자주적이고, 탐구적이고, 실험적인 학습이 강조되었다. 또한 레닌은 마르크스(K. Marx)와 엥겔스(F. Engels)의 종합기술교육 이론을 모델로 해서 소련의 공산주의 사회건설에 적합한 종합기술교육의 실천을 학교에서 중시할 것을 강조했다.


레닌의 정치철학은 산업의 발전과 인간성의 구현이었으며, 그는 이러한 철학을 실천함으로써 현실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무계급의 공산주의 사회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종합기술교육은 바로 그의 기본철학인 국가의 산업화와 모든 인민의 인간성의 구현을 촉진시키는 데 있어 최선의 공헌을 할 수 있는 교육활동이었다. 현대의 발전된 자연과학과 공학의 원리에 기초해서 단일 기술이 아니라 2가지 이상의 기술을 학습하고, 이러한 생산노동적 학습을 일반교육을 통한 이론적 또는 지적 학습에 결합시킴으로써, 전면적으로 조화 있게 발달된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 종합기술교육의 목표였다. 레닌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고 교육인민위원(소련방 문교장관에 해당)을 통해서 종합기술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각 학교에 지시하였고, 종합기술교육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조기의 전문화 교육의 지양(止揚)과 실업계 학교에서의 일반교육강화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의 진보적 교육은 30년대에 들어서면서 스탈린(J. Stalin)이 집권하자 사회주의 건설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이 시기에는 지식내용의 체계성 및 논리성이 강조되고, 아동중심적 교육보다는 교사가 지적 권위를 갖고 아동을 교수 또는 도야하는 교육이 높게 평가되었다. 소련의 공산당과 정부는 1930년대 초에 경제건설 위주의 교육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일련의 교육령을 공포하였다. 1931년에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공포한 교육령에는 '종합기술교육이 사회주의 건설에 도움이 되는 유능한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의 내용이 실려있다. 학문적, 훈련지향적 교육은 스탈린 정권 하에서 강조되었으며, “종합기술(polytechnical)”이라는 용어는 학문적 교육과정을 중시하면서 교육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게 되자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듯한 인상을 주었다. 1937년에 공포된 정부의 지령에는 모든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서 “노동교육훈련”을 하나의 독립된 교과로서 취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종전의 종합기술교육을 위해 사용된 모든 시설이 물리, 화학, 생물에 관한 실험실로 전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을 정도였다.


이와 같이 기본적 교육방향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종전의 “합과교수법(complex method)”을 지양하고 교과중심 교수법으로 기울어지도록 하였다. 그리고 학업성적을 평가하는 시험이 강조되고, 교사의 권위와 존엄성이 부활되었으며, 교실에서 생도들의 규율이 강조되었다. 1934년은 소련 교육제도의 근대화를 위한 획기적인 해였다. 왜냐하면 이 때 금일의 소련 학교제도의 기초를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34년에 소련방 인민위원회와 소련방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동결정인 “소련방에 있어서의 초등 및 중등학교의 구성에 대해서”가 발표되고, 여기에 따라 초등학교 4년(8세 ~ 11세), 불완전 중학교 7년 그리고 완전 중학교 10년의 보통교육제도가 확립된 것이다. 제 1차 및 2차 5개년 계획의 추진에 의해서 이룩한 경제 및 문화의 발전은 그러한 공교육제도를 확립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중등학교의 수와 학생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비(非)러시아 민족의 교육수준도 향상되었다. 보통교육의 발전뿐만 아니라 직업교육의 발전도 크게 촉진되었다. 따라서 야간학교, 강습회, 직업학교, 통신교육제도 등이 대대적으로 확충되었다.


그리고 1930년대 후반에는 7년의 무상의무교육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1936년의 소련방 헌법 제 121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소련방의 시민은 교육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권리는 보통 의무 초등학교, 7년의 무상의무교육제, 우수한 대학생에 대한 국가의 장학금 지급제도, 모국어로 진행되는 학교 수업, 그리고 공장, 농장, 기계 트랙터 스테이션 및 집단농장 등의 근로자에 대한 생산 기술 농업의 무상교육 제도에 의해서 보증된다.' 제 3차 5개년 계획에 의하면, 도시에서는 10년제 중학교의 의무교육을, 농촌 및 벽지에서는 7년의 의무교육을 실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독일군의 침입으로 인해서 좌절되었다. 독일군의 점령지역에서는 1500만 아동이 다니는 82,000개의 초 중등학교와, 334개의 고등교육기관이 파괴되었다. 대전이 끝나자 파괴된 학교시설은 복구되고, 1948년에는 전전(戰前)의 공업생산 수준을 능가하였다. 따라서 7년제 의무교육의 전국실시가 추진되었고, 이러한 목표는 1952년까지는 완전히 달성되었다.

그리고 1959년에는 8년제 의무교육계획이 공포되었으며, 이 목표는 1961년까지 전적으로 달성되었다. 스탈린(J. Stalin)이 사망한 후 집권한 흐루시초프(N. Khrushchev)는 스탈린의 정치 방식과 교육정책을 통렬히 비난하고, 새로운 개혁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육면에 있어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 치하에서 냉대를 받았던 마르크스 레닌주의 교육학의 중핵으로 볼 수 있는, 종합기술교육을 부활하는 정책을 시도했다. 1958년 12월에 “소련방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소련방 각료회의”에서 결정한 “학교와 실생활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소련방 공교육제도를 한층 더 발전시키는 데 대한 법률(Law on the Strengthening of the Ties of the School with Life and on the Further Development of the Public Education System in the U.S.S.R)”을 “소련방 최고회의”의 승인을 얻어 공포하였는데, 이 법률에는 종합기술교육에 의해 전면적으로 발달된 인간을 형성함으로써 마르크스 레닌의 가장 진보적인 이념을 구현하고, 경제의 발전과 공산주의 건설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개혁하는 원칙이 제시되고 있다.


흐루시초프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회의”에 종합기술교육의 가치를 강조하는 서한을 보낸 일이 있다. 그는 이 서한에서 종전의 학교교육이 지나치게 졸업증서를 위한 추상적 지식에 치우쳐 있다고 비난하고, 모든 아동들은 유용노동을 함으로써 공산주의 사회에 참가하도록 준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학교의 주요 과제는 노동의 신성함을 아동에게 인식시키고, 성장하고 있는 세대에게 실생활 및 유용노동에의 준비를 해주고, 사회주의 사회의 모든 원리에 깊은 존경심을 갖도록 청소년을 교육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는 다면적으로 교육된 인간, 즉 과학의 기초를 숙지하는 동시에 조직적인 신체노동의 능력이 있는 인간을 형성하고, 사회에 필요한 생산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흐루시초프 정권 하에서의 종합기술교육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습한 제 이론을 실제적인 산업생산과정에서 응용하는 기술에 관한 교수 생산의 기본 과정에 관한 교수 직업 기능에 관한 교수 특기할 만한 것은 1958년 12월에 법률에 의해서 종전의 7년제 학교를 “불완전 중등 일반교육 종합기술산업학교”(Incomplete Secondary Geoneral Education Polytechnical Industrial School)라고 불리 우는 8년제 의무학교로 확대 발전시키고, 10년제 학교도 11년제 학교로 개편함으로써, 학교에서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실제적인 노동교육 및 종합기술교육을 충분히 실시할 수 있도록 개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흐루시초프가 시도한 교육개혁은 그의 정치적 실각으로 인해서 크게 성공할 수 없었다. 흐루시초프의 뒤를 이어 집권한 브레즈네프(L. brezhnev)는 종합기술교육을 추진하는 정책에 소극적이었다.


그렇지만 스탈린 시대의 교육정책에 복귀하지는 않았다. 그는 1983년에 사망할 때까지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있는 동안, 진보적 개혁보다는 보수적인 온건한 개혁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단적으로 표현해서 브레즈네프 시대의 교육제도는 1973년 7월에 “소련방 소비에트 최고회의”에서 채택한 “소련방 및 연방제공화국에서의 교육의 법적 기초(The Legal Foundation of Education in the USSR and Union Republics)”라는 법령에 근거하고 있다. 이 법령에는 청소년들을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육성하는 레닌주의 사상을 실천에 옮겨 온 지난날의 광범위한 역사적 경험이 반영되고, 각 지역에 따른 공교육의 연관성을 갖게 하는 기본적인 원칙이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연방과 각 공화국의 교육제도가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통일체를 형성할 것을 보증하고 있다. 이를테면 소련의 학교제도는 단선형으로서 모든 단계의, 그리고 모든 종류의 교육의 통일성과 계속성을 실현 확보하는 것은 교육제도의 조직 및 운영의 기본적인 원칙임을 강조한 것이었다.


1973년의 교육개혁에 있어 제도적인 차원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의무교육의 연한이 종전의 8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되었고, 4년의 초등교육은 3년으로 단축되었으며, 이에 연속되는 5년의 전기 중등교육(8년제 학교)과 2년의 후기 중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10년제 학교)를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후기 중등교육학교를 수료하면,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할 수 있다. 흐루시초프 시대의 4-4-3학제가 5-3-2제로 개혁된 것이다. 브레즈네프 사망 후(1983)의 교육개혁은 흐루시초프 시대에 강조된 종합기술교육의 활성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향성은 1984년 1월에 공포된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작성한 교육개혁안 “일반교육과 직업학교의 개혁을 위한 기본적 지침(Basic Guidelines for Reform in the General Education and Vocational School)”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1984년 5월에는 종합기술교육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경제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기본 대책으로 연방정부는 “노동 훈련 교육 학생의 직업적 지도 학생의 조직 그리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적 조직을 한층 더 개선하는 것에 대하여(On Further Improvement in work, Training, Education and Vocational Orientation and the Organization of Student and Organization of Socially Useful and Productive Labour)”라는 포고령을 공표했다.


(2) 혁명 전


교육을 통한 대중의 각성과 의식의 변화를 두려워했던 짜리 전제정권은 제무원산하 교원학교의 확대건립을 꾀했다. 이를 위해 짜리 정부는 대중을 위한 초등 의무교육제도를 기피하고 신분에 따른 제무적 민족적 성적 차별교육을 강화했다. 1861년 농노해방 이후 처음 등장한 지방자치기구별로 설치된 공립학교에서는 주 1 ~ 2회는 교회사제들에 의한 신학과목이 필수적으로 교육되었고 민족별 모국어교육을 불허한 반면 고대 러시아어 교육에 치중했다. 또한 교사, 학생, 지방자치교육부는 내무부나 귀족회의 통제와 간섭하에서 각각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주말학교시설조차도 폐쇄되었고 대학 또한 교육의 자율성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 인민민주주의 운동을 주도한 인텔리겐치아 계층의 대중교육운동? 부진스키의 민주교육론과 「우리말교본」의 배포, 톨스토이의 농민어린이를 위한 자유학교교육(그의 개인영지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신설된 농민학교)은 세계적인 교육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후 소비에트연방 공산당의 전신인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1903년 모국어교육의 권리, 교회와 학교기관의 분리, 중등의무교육 및 탁아소의 설립 등의 강령을 선포했고, 1905년 2월 혁명, 대학 및 고등학생들의 학생운동, 교원조합운동을 겪으면서 대중교육의 필요성과 대중 교육열은 고조되었다. 1897년 러시아국민의 73%가 문맹상태였고 8 ~ 14세의 아동취학률은 1903년에 24%이던 것이 2월 혁명에 와서야 50%로 증가되었다는 당시의 통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혁명 전의 러시아사회의 학제는 농민, 도시노동자, 여성, 상류층 및 특권층 등의 신분제가 엄격하게 잔존되어 왔다. 리체이학교(귀족학교 : 1811년 최초 설립된 10년제 중 고등학교)는 특권층 귀족계급의 아들들을 교육시켜 고급관료로 양성 시켰으며 각종 신분별 김나지움(7 ~ 8년제 남자중학, 여자중학)은 대학교육과정으로 연결시켰다.


(3) 혁명 후


레닌 정권의 교육개혁은 한 마디로 민주주의교육의 현실화였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소비에트 정권은 우선 대학과 고등전문교육기구의 신설과 구시대적인 중등교육의 신분별 차등교육제도를 폐지함과 동시에 레닌의 부인 크루프스카야와 당시 문교장관 루나찰스키 등이 주도한 민주주의교육의 실현을 목표로 한 교육개혁이 단행되었다. 문맹퇴치, 비종교적 보통의무교육의 대중화와 더불어 자유로운 창조적 개인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나아가서 교육의 지역별 자율화, 자율적인 학교운영, 교육자의 처우개선 등을 제도화했다. 이 같은 개혁정책의 현실화를 위해 당국은 “좋은 것은 모두 아이들을 우선적으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유아원과 탁아소를 증설했고, 남녀공학, 소수민족의 균등교육권리보장, 교육내용의 실용화(탈종교화), 교원의 처우개선, 지방자치제로의 학교운영의 이관, 대학입학의 기회균등화를 실행했다.


(4) 스탈린 시대와 그 후


레닌의 권좌를 계승한 스탈린은 1920년 말부터 개인숭배기운을 강조하면서 당의 결정에 따른 교육이론과 교육실천의 획일화를 꾀하여 교육학자, 교사, 아동의 자주성과 독창성을 무시한 교육정책을 펴 나갔다. 또한 중공업 육성책의 일환으로 국민교육의 목표를 경제와 정치적 목적에 부합 시켰고 이에 따라 대학의 운영 및 관리를 다원화 시켜 통제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소비에트 당국은 교육과목 아카데미를 창설하여 「소비에트 교육학」과 같은 학술잡지의 발간을 통해 획일적인 정치이념적 교육을 유도했다. 통계에 의하면 전쟁 중 22,000개의 학교가 파괴되었고 학생 수는 26%의 감소를 초래했는데 그 중에서 8 ~ 10학년의 재학생수가 60%이상 감소되었다. 1956년 스탈린 비판의 절정기를 지난 후 출생률의 저하와 취학아동인구의 감소, 종합적인 기술교육의 경시, 청년층의 노동기피현상 등이 대두되자 교육학적 목표에 맞지 않는 많은 수의 세분화된 전문교육기관을 통폐합시킴으로써 보다 광범위한 범주에서 전문교육을 실시하게 되었고 대학과 기업의 생산현장을 하나의 교육장소로 묶으면서 대학의 인재양성을 경제부문의 활성적인 요소로 끌어당겼다. 이상의 혁명 후 교육정책은 문맹을 퇴치하고 필요한 다수의 기술자와 전문가를 속성으로 배출키 위해 교육의 양적인 확대를 주목적으로 삼아 왔다고 하겠다. 그러나 고르바쵸프적 개혁정책 하에서는 양적인 확대보다는 질적인 개선이 보다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더구나 개방과 민주화정책에 걸맞는 국민교육의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왜곡된 러시아의 역사를 바로잡고, 소비에트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봉착한 현시대적 모순에 대한 자기비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역사교육 등이 근본적으로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5) 러시아 교육의 현실태


러시아사회의 현대화과정에서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라면 교육시설과 교육기회의 양적 질적 확대라고 말할 수 있다. 1987년 한 해를 기준으로 볼 때 고등교육을 수료한 국민은 2억 8십만 명, 불완전고등학교를 마친 학생 수가 3백 5십만 명, 각종 특수학교를 마친 학생은 3억 9십만 명이며 전체 교육이수자의 65.6%가 보통중등교육을 이수했고 4천3백6십만 명이 초등교육을 받았다. 이는 인구 1,000명당 125명이 고등교육, 764명이 중등교육을 이수했다는 통 계이다. 러시아의 분석가들은 이러한 통계를 근거로 전체적인 대중교육수준의 향상을 위한 교육정책의 성공적인 결과로 평가하는데, 특히 직장근로자들의 교육수준이 지속적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기술자 및 기능공의 훈련면에서 육체적인 근로자들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두드러진 증가를 보이는 반면 비육체노동자들의 불완전중등학교라 함은 일반보통학교 기관에 속하는 학제의 하나로 완전중등학교와는 수학기간과 학생 수에서 차이가 있다. 초등교육을 마친 후 7 ~ 8학년까지로 끝나는 불완전중등학교의 졸업생 중 90%이상이 완전중등학교의 10학년 내지 11학년까지의 학업을 계속 연결시키고자 진학하고 있다. 따라서 비육체노동계층은 자신의 교육수준의 향상을 위해 완전중등학교의 학제를 선호했고 나아가서 종합대학이나 특수고등교육(특수고등전문학교)으로의 후기교육과정입학을 목표로 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러한 경향은 러시아 대중의 문화적 수준과 사회의식수준의 향상을 입증하는 것이며 결국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욕구증대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쵸프는 바로 이 같은 교육적 현상을 오늘날 러시아적 사회화과정에서 등장한 당면과제임을 직시했다. 문화적 수준이 향상되어 여가를 즐기고자 하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시민은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데 반드시 긍정적인 동인이 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선진국가들의 세태를 닮아 가는 러시아적 시민사회는 범죄, 속물근성의 만연, 사회적 무질서를 소화시킬 자체의 능력이 결핍되어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197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는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물욕적인 초과노동현상, 부정부패 등의 사회적 혼란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 러시아는 언론을 통하여 금주운동과 그에 대한 행정조치를 실행하고 있으며, 약물복용, 갱들의 무장강도행위, 공개적인 암거래, 마피아의 극성 등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보도하면서 사회정화 차원의 노력을 공식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사회를 위한 대중의 교육수준향상책이 아무리 성공적인 과정을 거쳐왔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개인적인 삶과 의식 속 깊이에는 결코 주입되지 못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겠다. 1984년 초등교육, 중등교육을 중심으로 교육개혁을 시작하여 대학교육까지 개혁을 진행했지만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현상, 청소년의 노동기피 풍토, 이에 따른 노동자, 즉 기술자 및 근로자들의 자질이 계속 저하되고 있다.이에 따라 당국은 노동 및 직업교육의 강화, 대학진학률의 억제책에 따른 직업기술학교와 생산학습 실습설비(콤비나트)로의 진로유도 등으로 사회 경제적 당면문제에 대응한 교육개혁노선을 현실화하고 있다. 2. 교육제도


(1) 취학 전 과정


취학 전 교육기관으로 유치원이 있으며, 유치원은 유아반과 유치반 등 연령별로 반별 구성한다. 7세 이하의 아동은 부모가 원할 경우 지역내 유치원에 언제나 입학이 가능하다. 러시아 유치원의 성격은 탁아소 성격이 강하나, 유치원 과정에서 초등학교 1학년 과정 수료도 가능하다. 1993년 이후 유치원에서 등록금을 받고 있어 취원 아동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유치원 수는 87,800개이며, 원생 수는 9,634,700명 정도이다.


(2) 일반 초 중등 과정


일반적인 초 중등 학교와 예능, 외국어 분야 등 영재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학교 및 장애자 학교, 기술 학교 등이 있다. 보통은 수업단계와 수업 연한에 따라 분류한다. 초등학교는 제 1수준으로 3 ~ 4년간이고, 중등학교는 제 2수준으로 5년간이며, 고등학교는 제 3수준으로 2 ~ 3년간이다. 모든 학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고유명칭 없이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한다. 예로써, 러시아의 제 1,086학교는 11년제 학교이고, 제 652학교는 10년제 학교(동일 캠퍼스 내에 제 1,2,3수준학교가 있음)이다. 연간 취학아동은 2 ~ 2.5백만 명 정도이다. 약 70%의 아동은 7세에 10년제 학교에 입학을 하고, 약 20%의 아동은 6세에 11년제 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머지 약 10%정도의 아동은 7세에 11년제 학교에 입학(이 아동들은 유치원에서 1학년 과정을 마치고, 2학년에 취학하는 경우)한다. 일반 중등교육 기관수는 66700개이며, 초등학교는 17,100개(25%),중등학교는 14,600(23%), 종합중등학교(52%)정도가 있다. 학생 수는 약 2천만명 정도이다. 일반 중등과정을 마친 학생의 30%는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고, 55%는 직업훈련을 받고, 15%는 야간이나 공공봉사교육기관에서 직업과 학업을 병행한다. 이중 20%가 심화특수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는다.


초 중등 교육을 비롯한 모든 교육은 무상이나 시장 경제를 채택한 이후 학교 경영 형편에 따라 학비를 받는 곳도 있다.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은 졸업하는 해 5 ~ 6월경에 보통 2 ~ 3주간에 걸친 졸업 시험을 치르는데 그 시험에 통과하여야 한다. 영재 육성 목적의 특수 학교는 수학, 과학, 예능, 외국어를 중심으로 하는 학교(예술 학교, 음악 학교 등)로서 우수학생이 입학하여 대학 진학시 특성화 학교 선택에 유리한 점이 많다. 장애자 학교는 정신 박약 또는 신체 장애자를 위한 학교이며 지체 부자유자를 위한 시설 등이 구비되어 있다. 중등 직업 기술 학교는 2 ~ 3년 과정의 직업 기술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며 주로 농공업 분야 전문 기술을 일반 교육과 병행하여 지도한다. 졸업 후 최소한 직장에서 2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기술 학교 졸업생의 경우 대학 입학도 가능하나 대부분 진학하지 않고 전문 기술 분야별로 취업을 하는 경향이다.


(3) 직업교육


직업에 대한 전문성은 117개 분야중 학생 스스로가 선택을 하게 되어 있다. 주야간 과정이 있으며 수업연한은 2 ~ 4년으로 직업학교와 전문직업기술학교로 분류되며 중등학교 과정을 교육한다. 직업학교의 수는 4,300여개 정도이고, 직업학교의 학생 수는 약 2백만명 정도이다. 그리고 전문직업기술학교의 수는 2,600여개 정도가 있으며, 학생수는 약 2.3백만명 정도이다.


(4) 고등교육


대학 과정은 종합 대학과 단과 대학으로 구분되며 수업 연한은 5년간이 원칙이나 서구와의 학제 차이를 감안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학교가 증가하고 있다. 종합 대학은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 위치해 있으며 보통 대도시마다 1개씩 있다. 단과 대학은 교육, 농학, 공학, 국제 관계 분야 등 전문 분야별로 설립되어 있으며 미술 아카데미, 음악 콘스브토리 등도 있다. 대학별로 전문화 특성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종합 대학과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며 어떤 단과 대학은 종합 대학보다 더 특성화되어 있는 곳도 있다.


정부에서 입학정원을 통제하고 있으므로 학과에 따라서는 치열한 입시 경쟁을 치러야 하는 경우도 많다. 러시아의 학제에는 대학과 대학원 과정이 별도로 구별되어 있지 않고 대학원생(아스피란트)은 종합 대학이나 단과 대학에서 수강하며 대학원 과정은 주로 개인 연구 중심으로 진행되므로 독자적으로 연구 계획을 세워 공부해야 한다.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는 데는 보통 3 ~ 4년이 소요되며 종합시험을 치고 논문을 통과하면 학위(칸디다트 Ph. D)가 수여된다. 칸디다트 이후의 학위는 “Doctor” 학위로서 우리의 경우 Post-Doc 과정에 해당되며 오랜 기간 직장에서의 연구 성과와 전문 활동을 거친 후 대개 40세 이후에 수여 받게 된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 온 경우 대학원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보통 어학연수 1년, 석사 과정 2년 해서 모두 3년 정도가 소요된다.

대학원을 수료하고 온 경우에는 대학에 따라 에스피란드(Ph. D)과정을 받는데 어학 연수 1년, 학위 과정 3년을 합하여 4년 정도 소 요된다. 러시아가 개방된 이후, 서구학제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대부분의 종합 대학은 서구 제도에 의한 학위 수여 과정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5) 한국과 러시아의 교육과정 비교

초등학교 일학년부터 고등학교 일학년까지 시기인 10년을 포괄하는 과정으로 이 과정이 끝나면 부즈(BUZ, 고등교육기관)라 불리는 고등전문학교, 즉 우리의 대학교와 같은 교육과정에 들어간다. 10년 중에서 모든 사람에게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교육기관은 8년이지만 7년간만 교육을 받아도 된다. 둘다 2년제로서 우리의 전문대학에 해당된다. 이 두 종류의 학교를 나와도 부즈에 들어갈 수 있지만, 대개 이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직업을 가진다. 러시아에서는 야간학교와 통신학교가 있으며, 대개 학생들의 절반 가량이 이들 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학사학위를 받는다. 이 학위를 받으면 대학의 교원이나 연구소의 연구원이 될 수 있다. 정해진 수학 연한은 없으며 학자의 학문적 성과를 평가해 수여한다. 러시아 최고의 학위에 대한 명칭이다.


3. 교원양성 및 교원임용


(1) 교원교육의 목표


소련에서의 교원교육은 많은 서구의 국가에서와 같이 단일화되어 있지 않고, 초등과 중등의 교사를 독립된 별개의 기관에서 양성하고 있다. 이를테면 전기중등학교(5 ~ 9학년)와 후기중등학교(10 ~ 11학년)교원은 정규의 고등교육기관인 “교육대학” 또는 “종합대학”에서, 초등학교(1 ~ 4학년)와 취학 전 교육단계인 교원은 전문중등학교의 유형에 속하는 “교육학교”에서 양성되고 있다. 물론 1950년대에 들어서부터 교원양성의 복선적 제도를 개혁하여 각 교육단계의 교원을 모두 고등교육기관에서 양성하는 방향으로 실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장차는 초등교육단계의 교원들도 중등교원과 같이 고등교육기관에서 양성되도록 교원양성구조가 재편성될 것이다. 소련 교원교육의 기본적 목표는 다음과 같다. 학생들에게 제 학문의 기초적 지식을 충분히 습득시키고, 공산주의적 세계관을 형성하도록 그들을 인도하며, 그들의 인지적 능력과 흥미를 발달시킨다. 학생들이 공산주의적 도덕정신을 철저하도록 교육 지도한다. 학생들의 건강을 촉진하고 그들의 인격적 특성과 생활조건을 고려하며, 보모 또는 보호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최선의 교육학적 지식을 가지고 지도한다. 학생들의 사상적 이론적 수준과 교육학적 자질을 체계적으로 향상시킨다. 학생들이 교사가 되었을 때 노동, 일상적 행동, 사회주의적 공동사회생활 등을 하는 데 있어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이상적 인간상으로 그들을 교육 지도한다.


소련에서의 이상적 교사상은 공산주의사상을 신봉하는, 이를테면 아동 및 청소년들이 사회주의적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데 책임을 솔선해서 수행하려는 “이념적 교육자”를 의미한다. 오고로드니코프(I. T. Ogordnikov)는 교원양성기관에서 형성하려는 이상적인 교사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상적인 소비에트적 교사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으로 ‘이념적 교육자(ideological teacher)가 되어서 청소년들이 과학적이고, 사회적이며, 공민적인 세계관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지도하는 데 책임을 져야 한다. 이와 같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교사는 교직전문적 교육을 받아야 할뿐만 아니라 폭 넓은 철학적 사회철학적 세계관 형성을 지향하는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상적 교사상으로서의 “이념적 교육자”의 형성은 1980년대에 들어서 종전보다 한층 더 강조되었다. 1984년 5월에는 1984년 1월 교육개혁안의 실천을 고려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교원의 양성과 자격의 향상을 위한 조치”(On Measures of Improving Training and Qualifications of Pedagogical Cadres)에 관한 법령을 공포했다.


이 법령의 주요 내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교원교육에 있어 이념적 정치적 교육내용을 한층 더 강조한다. 교원양성대학의 졸업생들에게 학교의 노동교육에 관계되는 산업적 교육과 종합기술교육의 원칙을 보다 효과적으로 깊이 있게 인식시킨다. 교원양성에 있어 보다 효과적으로 교육학적 심리학적 방법학적 이론을 적용한다. 교원양성대학의 전학년에 걸친(1 ~ 4 또는 5학년) 교육실습을 도입한다. 새로운 교원교육과정, 교과서, 교육방법 지침서 등의 개발을 촉진한다. 중등직업기술학교(SPTU)의 기술전문교육요원 양성의 양적 증대를 기한다. 러시아어 및 문학, 역사 및 사회과학, 수학 물리, 종합기술 및 노동교육 등의 교과를 전공하는 종전의 4년제 과정 이수생들은 1년 더 양성교육을 받도록 한다.


(2) 교원 양성기관


① 교육학교 (Pedagogicheskie uchilishcha) : 교육학교는 중등전문학교의 하나로서 초등 및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 학교에는 1 ~ 4학년의 초등교육단계의 4년제 교사양성과정과 취학 전 교육단계의 교사양성과정이 설치되고 있다. 대도시에는 이 두 개의 과정이 별도로 분리되어 설치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교사와 유치원 교사는 하나의 학교에서 양성되고 있다. 교육학교에의 입학자격은 원칙적으로 전기 중등학교(9년제학교 : 개혁 전에는 8년제 학교)를 졸업하여야 한다. 그러나 1954년부터는 후기 중등학교(10년제 학교) 졸업생을 입학시켜 2년간의 교원양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958년의 교육개혁 이후로는 초등교원양성도 점진적으로 정규의 고등교육기관인 “교육대학”에서 행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는데, 1980년대에 들어서 대도시와 진보적인 공화국(Georgia, Armenia, Estonia, Latvia 등)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교육학교는 주로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 교육학교의 교육과정은 초등교사양성의 경우 일반교과, 전문교육, 기타교과, 교육실습 등의 영역으로 구성되고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전문교육 영역으로서 주당 총 수업시간의 약 58%를 차지하고 있다. 일반교과에는 사회과, 수학 물리 및 천문학, 화학, 경제지리, 외국어, 과학적 무신론 등이 포함되며, 전문교과에는 러시아어 및 교수법, 문학, 산수 및 교수법, 자연 및 교수법, 역사 및 교수법, 해부학-생리학-위생, 심리학, 교육학, 음악 및 교수법, 미술 및 교수법, 체육 및 교수법, 교육자료 등이 포함되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수해야 할 기타 교과로는 체육, 민간방위, 작업장교육, 농업, 기술적 매체 등이 있다. 교생실습은 주당 3학년 시 2학기에 걸쳐 6시간을, 4학년 시는 한 학기만 6시간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외에 별도로 졸업할 때까지 10주의 교육실습을 하기로 되어있다. 초등 및 전기 중등교육학교의 음악과 체육문화는 음악교육학교와 체육문화 교육학교에서 양성된다. 입학과 졸업에 요구되는 요건은 교육학교의 경우와 같다. 소련방 각의의 체육문화 및 스포츠 위원회에 소속된 중등체육학교와 소련방 문화부에 소속된 예술학교의 졸업생도 일부는 학교교원이 될 수 있다.


② 교육대학 (Pedagogicheokie Instituty) : 교육대학은 종합대학과 동격의 고등교육 시설로서 교원양성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대학은 소련방 전체 고등교육기관의 1/4을, 전체 대학생 수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교육대학에서는 학교에서 교수되는 모든 교과가 전공학으로 교수 연구되고, 교사 후보자들은 각자의 희망에 따라 전공학을 정하고 그것을 연구할 수 있다. 많은 교육대학에서는 둘의 연관된 교과를 전공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수학과 물리, 생물과 화학, 지리와 생물 등을 동시에 전공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수업 연한은 1교과만 전공하면 4년이고, 2교과를 전공하면 5년이다. 교육대학에 입학하려면 11년제 학교(개혁 전에는10년제)를 졸업한 후, 입학경쟁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대학의 졸업자격은 국가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부여된다.


시험과목으로는 전공학과 그것의 교수법, 교육학 그리고 과학적 공산주의의 기초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이 지급되고 기숙의 편의가 제공된다. 교육대학의 교육과정은 3대 과정, 즉 전공과정, 교육학과정, 사회정치학 과정으로 성립되고 있다. 교육학에 관련된 과목으로는 교육학서론, 아동생리학, 학교위생, 교육학, 일반심리학, 아동 및 교육심리학, 각과교수법 등이 있다. 교생실습은 3 ~ 4학년에 걸쳐 16 내지 19주간 실시된다. 실습의 과정은 교육학교에서와 같이 학교방문, 직접적인 수업관찰 그리고 교수요목에 대한 토론부터 시작되며, 점차적으로 교실수업의 실천으로 이행된다. 교육실습기간에 교사후보생들은 단순히 수업관찰과 교실수업을 할뿐만 아니라 생도들의 과외활동을 지도하고, 그들에 대한 교육사회학적 교육심리학적 사례연구를 하고, 실습평가를 위한 세미나에도 참석한다. 교육실습 외에 교육대학생들은 “선봉단(Pioneer)”의 야영생활에 참가하여 지도자로서 3학년시의 하계방학을 이용하여 3주간 봉사활동을 하기로 되어있다. 지도대상이 될 소년 소녀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선봉단원과 함께 생활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교사후보생들에게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규모가 큰 교육대학에는 3년간의 연구과정(대학원에 해당)이 설치되고 있다. 3년의 과정을 수료한 후에 논문에 통과하면, 박사 후보의 자격인 학위(candidate of science)가 수여된다. 교육대학 외에도 미래의 교육학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서 소련방 교육과학원(Academy of Pedagogical Sciences)이 있다. 교육대학에서의 야간제와 통신제의 교육과정도 제공하고 있어, 일선교사들이 자격 및 자기향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교육대학에서의 교원양성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학생들은 국가고시에 응시해서 합격해야 교사자격이 인정된다. 교원국가고시위원회는 외부의 인사(타대학 교수)와 공화국 교육부의 대표를 포함해서 본 대학의 교수들로 조직된다.

국가시험은 4년제 과정의 학생은 4개 영역에 걸쳐 실시된다. 시험영역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제 1영역 : 사회과학 (소련사, 과학적 공산주의, 정치경제학, 철학 등) 제 2영역 : 전공교과 제 3영역 : 일반교육학 및 전공교과교수법 제 4영역 : 부전공교과 교육대학은 지방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여러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레닌그라드(Lenongrad)의 헤르젠 대학(The Herzen Institute)은 전형적인 교육대학으로 유명한데, 이 대학의 학부조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러시아어 및 러시아 문학부/소련사 및 일반사학부/수학 및 기술적 제도학부/물리학부/ 전자기술학부/생물학 및 화학부/외국어(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학부/지리학부/ 예술학부/스포츠 및 체육문화학부/특수교육학부(신체 및 정신장애아를 위한 교육)/ 일반교육학부


③ 종합대학 : 소련의 종합대학은 매년 신임교사의 15 ~ 20%를 학교에 취임시키고 있다. 종합대학 졸업생의 교직진출 비율은 전공학문에 따라 상이하지만, 대체로 러시아어 및 문학은 90%, 역사학은 85%, 지리학은 50%, 생물학은 35%, 외국어는 20%가 교사가 되고 있다. 종합대학에서의 교원양성 방식은 교육대학의 그것과 유하지만, 교육과정에서의 강조점에는 약간의 차가 있다. 예를 들어 종합대학에서는 교직과정보다는 정치적 학습에 관계되는 과정에 보다 많은 시간을 배당하고 있고, 교육실습의 기간도 교육대학보다는 짧다(2개월 정도). 또 교육대생들은 일반적으로 둘 또는 셋의 교과를 동시에 전공하고 있는데 대해서 종합대생들은 하나의 전공만 이수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종합대생은 전공학에는 깊이가 있지만 교사로서의 자질은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반하여, 교육대생은 전공학에 깊이는 덜 하지만 교육자로서의 자질은 구비하고 있음을 인정받고 있다. 1984년의 교육개혁에 의해서 후기 중등교육학교(10 ~ 11학년)가 확대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전공교과 지식에 깊이 있는 교사를 종전 보다 많이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필요는 종합대학에서의 교원양성을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금일에는 사범학부를 신설하여 전문적으로 교원양성에 주력할 수 있는 기구를 갖추고 있는 종합대학도 출현하고 있는 실정이다.


(3) 교원의 재교육


소련에서는 대학에서 소정의 교원교육과정을 이수하고 학교교원이 되었다고 해서 교원교육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일정한 기간 교직경험을 가진 후의 재교육 또는 현직교육은 정규의 교원양성기관에서의 교사후보생으로서의 교원교육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소련에서 교원을 재교육하는 전문기관인 “교원재교육원”이 각 지역에 설치되고 있다. 이러한 기관은 최초로 1938년에 모스크바에서 개설되었는데, 그 후 점차적으로 전국 각 지역에 확대되어 갔다. 현재 모스크바의 교원재교육원은 65명의 전임 전문가와 시간제로 근무하는 상당수의 요원을 고용하고 있고, 20개의 교과교육부를 설치하고 있으며, 시의 각 지구에는 보조적 역할을 하는 지역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1만 명의 현직교사를 재교육하는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으며, 매년 약 3만 명의 교사들이 특강에 참여하거나 교육 전문가로부터 지도조언을 받고 있다. 소련의 교사들은 5년마다 한 번씩 현직의 재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다.


물론 재교육은 강제적인 것은 아니지만, 재교육원의 시설이 확충되고, 교직생활을 계속해서 하려면 재교육을 통한 자기향상이 요구되기 때문에 금일에는 거의 모든 교사들이 재교육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사들은 5년마다 1주일에 2일간의 수업에서 면제되어 전일에 걸쳐 교육을 받는 것이 도시에서는 관례로 되어 있다. 그들이 현직교육을 받는 동안 수업은 대기중인 보충교사에 의해서 진행되며 봉급은 전에 받던 대로 전액이 그들에게 지급된다. 그러나 벽지의 학교교사들은 교원의 부족 또는 교통문제로 인해 전적으로 재교육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통신을 이용한 교육 또는 1개월간의 기숙제 교육을 받게 된다. 어느 지역에는 농촌의 교사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교원재교육원에서 파견한 요원이 주도하는 강습을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

소련에서는 계속적 학습을 포기한 교사는 교사가 되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다. 교원재교육원에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이것의 담당교과교수에의 적용, 담당교과 지식의 새로운 개발, 교수법의 기술적 개발 등의 영역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여 교사들을 재교육하고 있다. 이 기관에서는 교장들을 위한 연구집회도 한 달에 한 번씩 주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련 교사들은 사회에서 존경을 받고 있다. 수많은 교원들이 소련방 최고회의, 각 공화국 및 자치령의 최고회의, 지방 노동인민회의의 의원으로 선출되고 있는데, 이것은 인민들이 교육을 높이 평가하고 신뢰하고 있는 하나의 증거로서 해석되고 있다. 또 수많은 교사들이 소련방의 훈장과 메달을 수여 받고 있다.


교육제도의 발전에 공헌하고, 청소년들을 공산주의적으로 육성한 공헌으로 인해서 소련 최고의 명예로운 칭호인 ‘사회주의 노동자 영웅’을 수여 받은 교원들이 상당수 있다. 각 공화국에서는 공화국 최고회의에서 수여하는 ‘명예학교교사’라는 칭호가 있고, ‘소련 모범교사’라는 휘장(badge)이 있다. 교원들에게는 또 저명한 교육자 또는 교육학자의 이름을 딴 메달이 수여된다. 소련방 쿠르프스카야(N. K. Krupskaya)메달, 러시아 연방 공화국의 우신스키(K. D. Ushinsky)메달, 죠지아공화국의 마카렌코(A. S. Makarenko)메달 등이 있다. 매년 10월 첫번째 일요일은 ‘교사의 날’로서 큰 행사가 벌어진다. 현재 모든 교원들은 ‘교원 및 연구노동자 조합’의 성원으로 되고 있다. 이 조합의 목표는 성원들에게 자질향상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고, 휴식 및 오락의 편의를 도모하고,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동시에 생활수준을 향상하도록 노력하는 데 있다. 현재 300이상의 교원조합이 각종 클럽과 문화 센터를 조직 설치하여 활동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소련의 교원들은 사회경제 및 문화발전의 일대 원동력 또는 창조적인 역량으로 되고 있다. 레닌은 한 때 교원들에게 교사들은 교수하는 일에 활동을 제한하지 말고, 그것을 혁명적 투쟁의 일부가 되게 함으로써 교수와 사회주의 건설을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학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 일이 있는데, 소련의 교원들은 이러한 말에 충실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Ⅲ. 결 론


지금까지 러시아의 교육제도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들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일반적으로 러시아의 교육수준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진학 희망률도 매우 높으며, 대학졸업 학력소지자의 숫자도 미국에 비해 훨씬 많다. 반면에 고급인력의 과잉으로 대학졸업자의 학력수준에 맞는 일자리가 충분하질 않은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의 높은 교육열은 국가경제 전체적으로 볼 때 낭비라고 하는 비판도 있다. 즉 경제활동능력이 왕성한 계층이 불필요하게 대학에 집중되어 생산노동력 부족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교육시설은 매우 낙후되어 있다. 특히 초급학교의 경우 교실부족으로 약 1/4 정도가 2부제 또는 3부제 수업을 받는다. 현재 이러한 교육문제의 해결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투자여건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심각한 경제적 위기상황에 봉착한 국가예산은 교육분야에 필요한 정도만큼 보장해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면한 문제해결에 소요될 재정지원도 못해 주는 형편이다.

교사급여는 물론 학생들의 장학금이나 급식교도 거의 2/3이상 삭감되어 있다. 사실상 일선 교육기관들은 급상승하는 인플레 때문에 재정계획을 정상적으로 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국가예산으로부터 큰 기대를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국가예산에 기대지 않는 자발적인 재정적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중이다. 결국 이러한 해결방안의 하나로 나온 것이 독립채산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독립채산제의 명목 하에 취해진 교육기관의 자율화 조치는 어쩌면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러시아 교육기관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러시아가 겪고 있는 교육기관의 위기는 구조적인 개편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의 형성, 즉 사유화 진행의 점진적인 단계에서 요구되는 기회주의적이고 상업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개혁은 과거와 비교해 볼 때 '민주화'로부터 '자유화'로 그 성격이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우선 교육시설의 설립자가 국가라는 유일체에서 국가기관이나 지방행정기관, 기업, 사회-종교단체, 외국인을 포함한 개인들로 자율화되었다. 그리고 교육시설의 형태가 다원화됨에 따라 학교제도의 단일성 원칙이 사라지고, 정규교육 외에 개인에 따라 학교나 교육선택의 자유가 확대되었다. 또 의무-무상제 원칙은 여전히 고수되고 있으나, 교육수준의 차별성이 현저하기 때문에 가진자에게 유리한 제도로 변모했다고 고 볼 수 있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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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이트

경향신문 지구촌 국가정보 http://www.khan.co.kr

/ 외교통상부 http://www.mofat.go.kr

/ 경희대러시아어학과 http://dunet.nmc.re.kr

/ 치우러시아정보사 http://www.kotis.net/~chiwoo/korea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