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대장정

도산의 정신

2014. 8. 5. 15:42 - 유라시아대장정

도산의 정신



도산의정신과 철학


첫째로 사, 언, 행 에 있어서 남의 본보기가 될 만한 건실한 도덕적 품성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건전한 인격은 한 가지 이상의 전문 지식과 생산 기능을 가진 생산적 직업인이라야 한다. 

셋째로 도산은 건전한 인격의 내용으로서 튼튼한 신체를 강조했다. 


도산은 한말의 애국 지사들 가운데서도 확고한 자기의 사상과 신념을 가지고 항일투쟁을 전개해 나갔던 유일한 인물이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분노에 맨주먹을 불끈 쥐며 감정적으로 일어나는 애국 지사들도 많았으나 도산은 그러한 감정적인 대응뿐 아니라 독립운동의 방법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세워 꾸준히 실천하며 민족을 위한 비전을 제시한 지도자였다. 도산이 가졌던 사상은 남의 이론이나 지식에서 따온 것이 아니고 도산이 직접 독립운동과 투쟁의 삶을 통해서 몸소 창조해 낸 것이라는 데 더 의의가 있다. 그의 사상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이 독립을 얻고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구국의 일념으로 흘린 그의 눈물과 땀방울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도산이 생존한 당시 한국 사회의 역사적 과제는 민족의 독립과 번영이었다. 즉 일제의 정치적 지배의 쇠사슬에서 벗어나 민족의 독립을 이룩하여 복된 국가를 건설하는 일이다. 도산의 사상의 초점도 여기에 있었다.


도산은 우리 민족이 독립을 이룩하려면 민족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제 힘만큼 밖에 달릴 수 없듯이 민족도 제 능력만큼 밖에 발전할 수 없다. 큰 일에는 큰 힘이 필요하고 작은 일에는 작은 힘이 필요하다. 작은 힘으로 큰 일을 할 수 없다. 힘이 있으면 살고 힘이 없으면 죽는다. 이것이 자연과 역사의 준엄한 법칙이며 힘이 일체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을 믿고 힘을 기르는 도리밖에 없다. 도산은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이 독립에 필요한, 독립을 달성할 만한 힘을 길러야 한다는 힘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힘의 필요와 힘의 양성을 주장한 다음, 무슨 힘, 어떤 힘을 기를 것이냐를 논하였다. 그는 단결의 힘, 도덕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고 또한 지식의 힘, 금전의 힘, 인격의 힘을 기르자고 주장했다. 또 표현을 바꾸어 신용의 자본, 지식의 자본, 금전의 자본을 저축하자고 말하며 특히 동맹저축을 강조했다. 서로 동맹하여 그러한 힘과 자본을 저축하자는 것이었다. 한 개인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에도 건강이니 지식이니 기술이니 하는 밑천, 즉 자본이 필요하다. 한 민족이 독립 국가를 이룩하려면 여러 가지의 힘과 밑천과 자본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특히 '인격의 힘'은 도산이 평생 독립운동의 중심에 두고 추구하였던 힘이다. 도산은 개인 하나하나의 건전한 인격은 집을 짓는데 쓰이는 재목과 벽돌 하나하나가 튼튼하고 견고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개인의 인격과 민족의 힘과의 관계를 집짓기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나 하나가 건전한 인격이 되는 것이 곧 애국의 길이라며 나부터 나를 건전 인격으로 만드는 일이 민족을 강하게 하는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수양, 즉 독립' 이라는 도산의 사상이 여기서 유래한다. 도산은 건전한 인격은 다음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첫째로 사(思)·언(言)·행(行)에 있어서 남의 본보기가 될 만한 건실한 도덕적 품성을 가져야 한다. 건전한 인격은 먼저 덕성을 지녀야 한다. 인격적 덕성을 함양하기 위해서 도산은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의 4대 정신을 강조했다.


무실 (務實)

참되기를 힘쓰고 진실되기를 힘쓰자, 실질에 힘쓰자는 뜻이다. 무실의 반대는 거짓이다. 거짓말 하지 말자, 속이지 말자 즉 정직하기를 힘쓰자는 뜻이다. 또 무실의 실(實)은 실천·실행·실용·진실·실질의 `실(實)'로써 진리탐구에 힘쓴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무(務)'는 힘을 쓴다는 뜻으로, 진실을 알고 이를 실천하자, 저마다 참된 것을 힘쓰고 참된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역행 (力行)

행하기를 힘쓰자는 뜻이다. 참이라고 믿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 마땅히 해야 하는 일, 혹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주저하지 않고 꾸준히 실천하고 노력하고 걸어가는 자세를 말한다.


충의 (忠義)

충의는 충성과 신의를 합친 말이다. 일이나 사람에 대해서 언제나 참되고 신용이 있고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일단 작정을 하면, 내게 이롭건 불리하건 끝까지 성실성을 다하고 신의를 지켜야 한다. 일에 대해서는 충성을 다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신의를 다하자는 것이 충의이다.


용감 (勇敢)

용감은 옳은 일을 위하여는 두려움 없이 돌진하며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참고 견디는 자세를 가리킨다. 용기는 정의와 진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며 신념에 따라 거리낌이 없이 일관된 삶을 사는 것이 용기이다.


둘째로 건전한 인격은 한 가지 이상의 전문 지식과 생산 기능을 가진 생산적 직업인이라야 한다. 도산은 특히 이것을 강조했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기술자를 장(匠)이라고 하여 생산 기능을 멸시하는 폐습이 있었다. 그래서 놀고먹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런 불로(不勞)의 악습에서 민족의 번영과 부강을 바랄 수는 없다. 도산은 일하는 것은 즉 민족의 번영을 위하는 애국행위라 하여 이를 늘 장려하였다.


마지막으로 도산은 건전한 인격의 내용으로서 튼튼한 신체를 강조했다. 도산은 언제나 4대 정신과 3대 육을 역설했다. '3대 육' 이란 '덕육(德育)'·'체육(體育)'·'지육(智育)'인데, 그는 지육보다도 덕육과 체육을 앞세웠다. 덕이 없는 지(知)는 악의 힘이 되고 건강 없는 자의 지(知)는 불평밖에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도산은 이 같은 세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춘 인재를 수만 명 기를 수 있다면 우리는 일제의 탄압 밑에서라도 자주독립국가가 되어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도산은 흥사단을 비롯한 여러 수양단체를 조직하고 교육활동을 활발히 펼침으로써 그 신념을 실천에 옮겼다.


도산은 또한 인격의 훈련과 동시에 단결 훈련을 강조하였다. 그는 민족의 힘이란 민족 각 개인의 덕력과 지력과 체력의 총화이며 정치력이나 경제력이나 병력 같은 것은 개인의 힘의 조직이요 결과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민족의 기본 역량을 기르려면 민족을 구성하는 각 개인의 힘을 양성하는 것 뿐 아니라 양성된 힘을 하나로 조직하고 단결하는 일 또한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평생에 걸친 독립운동 속에서 수많은 조직들을 만들어 운영해 나갔고 조직과 조직간의 협동과 단결, 통일에 때로는 자신의 지위나 이권을 포기하면서까지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힘이 있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인격의 개조 뿐 아니라 민족성을 개조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하였다. 도산은 한국인의 민족성의 병폐는 거짓과 공리공론이라고 분석하였다. 그는 허위는 모든 악의 근원이라 하여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거짓을 없애고 진실하게 행할 때, 민족의 번영과 부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실천과 실행이 없이 말로만 떠드는 `공리공론' 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공론가는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남 보고만 잘하라 하고 또 남에게 왜 잘못했느냐고 시비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잘 되고 못 되고가 다 나에게 달렸다고 느끼는 강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나라 일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앞장 설 때, 우리 민족이 독립국가로서 설 수 있는 기반이 세워진다는 것이다.


도산은 이러한 자기의 사상이 민족 경륜의 철학이라고 굳게 믿고, 죽는 날까지 몸소 부르짖고 실천했었다. `무실 역행주의' 를 실천하여 각자가 자아 혁신과 인격 혁명을 이루어 서로 단결하고 서로 사랑하는 공부를 해서 저마다 진실되고 부지런하고 (무실역행) 신의 있고 용감한 국민이 되려는 (충의용감) 도덕 혁명과 민족 개조 운동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번영과 행복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의 구국의 이론은 이를 진실되게 행동으로 옮긴 그의 숭고한 생애를 통해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도산은 한말 일제하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민주주의적 가치의 중요함을 일깨워 이를 실천해간 인물이다. 평생에 걸친 구국운동을 통해서 늘 근대적인 민주국가로서 우리나라가 거듭나야 할 것을 강조했으며, 독립운동을 위해 조직을 결성하거나 조직체들 사이에 통합이나 협동을 이룰 때에도 늘 민주적인 절차를 따랐다. 또한 개인의 윤리, 태도, 삶의 방식에 있어서도 민주적인 원리를 주장하였다.

비록 민주주의가 무엇이라고 명쾌하게 개념규정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도산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보여준 참된 민주주의자였다. 이러한 도산의 민주주의론은 다음 3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정치적 이념체계로서의 민주주의 

사회전반의 권력구조 또는 사회적 성격을 논하는 정치적 이념체계로서의 민주주의이다. 도산이 명확하게 정치체계로서의 민주주의의 내용을 설명한 부분은 없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정치제도에 대하여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미국은 지금 세계상에 가장 신성한 공화국으로 자유와 정의를 힘써 창도하나니..." 라고 하여 미국과 같은 선진 문명사회의 장점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도산이 1907년 국내에서 비밀결사조직 신민회를 결성할 당시, 신민회가 가졌던 정치적 목표는 단순히 입헌군주제 국가인 대한제국을 그대로 연장시키자는 것이 아니었다.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여 가장 선진적인 민주공화제의 근대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1919년 3.1운동 후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불완전하게나마 일단 실현되는데, 임시정부의 헌법에는 사유재산의 보유와 영업활동의 자유 및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 등 국민들에 대한 제반 자유가 법률로 보장되어 있다. 한말에서 1920년대 전반에 걸치는 도산의 민주건국론의 구체적 내용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바탕 위에서 각종의 시민적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국가 건설론이었음을 나타내준다.

물론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에는 독립운동세력이 좌우로 나뉘는 것을 막고 하나로 통합, 단결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에 평등의 개념을 강화한 사회민주주의 국가 건설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도산이 공화제의 수립을 강조한 것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한 것을 미루어 보면 도산이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주요한 준거로 삼았음은 틀림이 없다.


2. 사회단체의 조직 원리로서의 민주적 결합


조직결합·조직통합의 원리로서의 민주주의, 민주적 원리이다. 도산은 독립운동가 및 독립운동 단체들의 조직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분열되는 현상을 가장 잘못된 것으로 비판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주요한 원인을 `조직에 합당한 지식과 태도' 가 결여된 데서 찾았다. 도산은 당시 일반적으로 설명되던 분열의 요인, 즉 지방열이나 분파성들을 적극 부정하고 있으며 오히려 다양한 의견의 대립상황을 조직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다만 이러한 다양성이 조직적 통일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공론(公論)에 입각한 통일이 필요하고 그것은 민주적인 조직의 원리를 수용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보았다.

'공론' 은 도산의 민주적인 조직통합원리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도산이 공론이라고 하는 말은 구성원들이 각각 자신의 의견과 방침을 구체적으로 발표하고 서로 토론하는 가운데 대다수가 공감하게 됨으로써 얻어지는 '다수의 공통된 의사' 를 뜻한다. 이 공론은 반드시 다양한 의견의 토론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기 대문에 다수의 의견이 집약되는 것이다.

도산의 공론은 구체적 계획과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선택되어 공감되는 결론 내지 여론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데올로기와는 구별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의 민주주의론은 다양한 구성원들의 이질성을 바탕으로 통합된 조직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는 핵심원리가 된다. 특히 상해 임시정부를 통합하기 위해 벌였던 도산의 활동 속에는 이렇게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과 견해가 부딪히는 상황을 용납하되 그것을 바탕으로 통합된 결론을 이끌어내려고 하였던 도산의 민주적 조직이론이 잘 드러난다.


3. 개인의 삶의 방식 속의 민주주의


개인의 윤리·태도·삶의 방식과 관련된 민주주의의 차원이다. 도산의 민주주의 이해는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의 평등하고도 자유로운 인격을 인정하는 데로 연결된다. 그는 인간은 자신의 양심과 이성에만 복종하는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 어떤 주의나 조직에 복종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그는 어린이나 노약자·여성 등의 인격이 동등하게 강조되는 사회를 바랐고, 특히 흥사단 운동을 통해 인격수련을 강조하였다. 도산은 서로 사상의 자유·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비록 의견은 서로 다르더라도 우정과 존경에는 변함이 없는 태도와 인격을 갖출 것을 요구하였다. 흥사단 운동을 통해 도산이 강조한 인격훈련의 주된 내용도 이러한 것이었다.


조직운동과 리더십


도산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특히 `조직의 명수' 였다. 실제로 도산의 생애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그가 일생 민족운동(국권회복운동·독립운동)과 사회운동(민권운동·청년운동)에 헌신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그러한 그의 운동은 반드시 그 운동을 담당하는 조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또한 알 수 있다. 독립협회, 공립협회, 신민회, 흥사단, 대한인국민회, 상해 통합 임시정부 등은 모두 도산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만들어낸 조직들이다. 1932년 일제에 의해 붙잡혀 강제 귀국되어 병고에 시달릴 때까지 그는 한시도 '운동' 과 '조직' 을 떠난 적이 없는 것이다. 도산에게 있어서 '조직론' 은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지 조직의 중요성·조직 통합의 기반· 조직의 구조로 나누어 정리해보자.


1. 조직의 중요성

`세상의 모든 일은 힘의 산물이다. 힘이 작으면 일을 작게 이루고 힘이 크면 크게 이루며 만일 힘이 도무지 없으면 일을 하나도 이룰 수 없다' 는 도산의 말은 그의 사상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민족의 흥망도 결국은 민족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한 민족의 힘이라는 것은 결국은 민족 구성원 개개인의 힘에 바탕을 두는 것이라고 보고 개개인이 자신의 활동영역 내에서 보다 유능하고 실력 있는 자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곧 민족의 힘을 강화시키는 길임을 강조하였다. 물론 이 개개인의 힘이 조직적으로 결합되는 힘이 약하면 커다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지만 민족의 힘이 강화되는 기반으로서 개인의 힘은 중요한 것이다. 도산은 민족이나 공동체의 힘의 근원이 개인의 힘에 있다고 보았지만 이 양자가 아무런 조건 없이 동일시 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개인의 힘이 민족의 힘으로 전환되기 위하여 반드시 갖추어져야 할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개개인의 힘을 전체적인 것으로 결집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산은 이를 '민족적 결합력', '단결력', '조직력' 등의 말로 표현하고 있다. 도산이 그의 연설과 담화에서 늘 강조한 것은 통일·단결이란 말이었다. 민족의 힘이란 것이 전민족의 단합과 단결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산의 생각은 4대 정신(무실·역행·충의·용감)로 무장하고 인격훈련을 잘 받은 개인들이 '신성한 단결' 을 함으로써 조직적 활동을 하는 것을 이념으로 삼은 그의 흥사단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2. 조직 통합의 기반


1) 사업과 계획


도산은 조직에 있어서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해악이라고 보았다. 단지 교제의 수단으로 통일과 단결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 실질적인 사업을 둘러싼 결합과 단결이야말로 조직적 결합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도산은 강조하였다.


2) 공 론


도산은 조직의 통일과 통합은 결코 개인의 의견 차이나 대립, 갈등 등이 없는 절대적인 동질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조직적 통합은 구성원들의 다양하고도 자유로운 의견들의 논쟁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또한 구성원들이 각각 자신의 의견과 방침을 구체적으로 발표하고 서로 토론하는 가운데 대다수가 공감하게 됨으로써 얻어지는 '다수의 공변된 의사'를 '공론(公論)'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이 공론은 다양한 의견의 토론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이 집약되는 것이다. 일단 공론으로 결정되면 누구나 이 공론에 복종해야 할 것에 대해서 주장했다.


3) 재 정


도산은 특히 조직적 활동에 있어서 재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다. 한국민은 유교의 영향으로 재(財)를 천하게 여기는 전통과 오랜 쇄국주의하에서 경제적 경쟁의 생활을 못한 것으로 인해 재정에 관한 관심이 희박하였다. 경제적 실력이 없는 가운데 독립운동을 전개함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나가는 과정과 다름아니었다. 도산은 독립운동 가운데 재정적 기초를 마련하는데 주력하였다. 도산은 독립운동 하노라 하며 노는 자는 독립의 적이라고 말하고 국민들에게 재정으로 독립운동을 도울 것을 역설하였다.


3. 조직의 구조


1) 중앙 집권성


도산은 조직적 통일은 반드시 중앙집권적인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고 보았다. 공론에 기초하여 조직 전체를 관장하고 외부로 조직을 대표하는 중앙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적 통합은 심리적·정신적 통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무상 통일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일을 담당하는 중앙기관이 꼭 필요하다고 보았다. 도산은 대한인 국민회의 힘이 약해지게 되었던 원인도 지방총회가 너무 많아져서 중앙으로 힘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고 중국관대·만주·러시아 연해주 등에 산재한 독립운동 단체가 별개로 활동할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를 최고지휘부로 하여 통일적이며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 지도자론


지도자는 그의 인격과 성실로 남의 `본보기' 가 될 뿐 아니라 실질적인 계획과 행동으로 그 집단이나 사회를 통일적으로 이끌어가는 존재라고 보았다. 도산은 협동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지도자란 개인의 특이한 자질이나 탁월한 능력에 의해 출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협동이 요구되는 상황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지도자는 조직의 실질적 필요성 때문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지도자가 되는 자격은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도자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능력이나 헌신성을 가진 자가 그 단체나 조직을 위해 노력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교육사상


도산에 관하여 '독립된 나라에서 살았더라면 사범대학의 교수로서 교육학자로서 위대한 교육이론의 전개와 그에 따른 교육실천에 힘썼으리라' 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그는 민족의 지도자, 독립운동가임과 동시에 뛰어난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평생동안 여러 개의 학교를 설립하고 가는 곳마다 사회교육 운동을 추진하였으며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여러 개의 단체를 조직하였던 도산의 일생은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 해준다.

도산의 교육사상은 교육입국사상, 개방적 교육, 인격교육과 실용교육의 통합, 교육평등, 자율적 학습 등의 다섯 가지 주요 특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교육입국사상 

교육입국사상은 힘의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도산 사상 자체의 핵심이다. 

그는 "우리가 망국의 비운을 당하는 것은 힘이 없는 까닭이니, 힘이 모자라서 잃은 것은 힘을 길러야 찾아질 것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말하는 '힘'은 무력이나 경제력이나 또는 실용적인 지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의식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민족으로서의 각성도 포함하고 있었다. 도산은 우리가 일제의 침탈을 막지 못하고 국권을 상실한 것은 이러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 힘을 기르는 것이 국가독립의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하였으며 힘의 배양은 교육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강조하였다. 도산은 교육의 힘과 중요성에 대하여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주도한 독립운동 전략의 핵심에는 늘 교육이 위치하고 있었다.



2. 개방적 교육 

도산의 교육사상은 개방적 교육에 기초하고 있다. 즉 교육의 대상·교육방식·교육내용에 있어서 개방성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실천하였다. 처음 설립한 점진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그리고 흥사단 동지들에게 행한 다음 연설에서 그가 견지한 교육개념의 폭이 얼마나 확대된 것이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일을 참으로 하여 보고자 하므로 품격이 부족하고 지식이 없고는 아니되는 것을 더욱 밝히 알았다. 이러므로 우리부터 한가지 이상을 배우면서 전국 청년이 다 같이 배우게 하려고 수학동맹을 목적으로 정하였는지라. …. 각각 그 정도와 처지를 따라 혹은 대학으로 혹은 중학으로 혹은 소학으로, 혹은 단기학교로 혹은 전습소로, 그렇지 아니하면 말 기르고 양치는 마당으로, 삼림과 과목을 재배하는 동산으로, 새엇ㄴ 잡는 


3. 인격교육과 실용교육의 통합 

도산의 힘의 철학에 있어서 힘은 인격과 지식의 균형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도산은 인격수양을 언제나 강조하였다. 그 예로 그가 앞장서서 조직한 흥사단은 인격수양을 위한 청년조직으로서, 무실·역행·충의·용감의 정신의 실천을 목표로 삼았다. 또한 도산이 설립하여 운영한 모든 교육기관의 교육이념의 본질은 `성실' 이며, 교육 목적은 건전한 인격을 지닌 애국심 있는 국민을 기르는 데 있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이것이 학생에 대한 최대의 요구였다. 특히 대성학교의 교육은 정직과 시간엄수가 강조되었다. 인격교육은 모든 것에 최우선 할 뿐만 아니라 결코 교과교육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산은 참된 인격교육은 모든 교과와 과외 활동과 잠재적 교육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하여 학생의 교육뿐만 아니라 교원을 감화함으로써 인격교육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자 했다. 또한 교과 활동 못지 않게 인격 수련과 애국심의 배양과 강인한 정신 훈련,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를 기르기 위한 각종 과외활동을 적극 권장하였다.


4. 교육평등 

교육평등은 도산이 주창한 대공주의의 네 기둥 가운데 하나이다. 대공주의는 도산의 만년의 인생론과 경세론이 종합되어 있는 사상체계이다. 민족주의자들이 추구하던 궁극적 목표인 자주독립의 민족국가라는 틀 속에서 사회주의의 최대 가치인 평등개념을 적극 수용하여 안으로는 이를 정치·경제·교육의 세 부문에서 실천해 평등사회를 실현하고, 밖으로는 민족국가 간의 평등에 기초해 평화적 세계질서 구축에 기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사상이다. 이러한 그의 평등사상이 반영된 한국독립당의 강령을 살펴보면 "생활상의 기본지식과 필수기능을 충분히 얻을 수 있도록 공비에 의한 의무교육제를 실시하여 국민의 구학권을 평등하게 함." 이라고 하여 국비의무교육제와 함께 모든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게 하도록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도산은 교육이 평등하지 못하면 신분제도에 의한 사회구조 재생산을 교육제도가 담당할 것이기 때문에 교육평등이 현대의 사회정의 실현에 필수적 요소임을 일찍이 파악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5. 자율적 학습

도산 교육사상의 뚜렷한 특성 또 한 가지는 자율적 학습의 강조이다. 도산은 잘 가르치는 것보다 잘 배우는 것에 관하여 훨씬 많이 말하였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 열심히 배워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도산의 교육사상은 가르치는 일을 제시한 `교육론' 이 아니라 배우는 일을 제시한 `학습론' 이다. 현대적 용어로 표현하면 `자기주도적 학습' 을 도산은 강조하였다. 자율적 학습의 한가지 실천 방식인 `동맹 수련' 은 도산이 고안한 독특한 집단 학습 방식이다. 동맹수련은 "수양의 뜻이 있는 자들이 단독적 수련을 피하고 합동적 수련을 꾀하여 협동하여 자치적 훈육을 이루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흥사단의 기본 수련방식의 하나로 제시한 것인데,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아도 새롭고 독특하며 모든 교육상황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학습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