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대장정

참회의 축제

2016. 1. 3. 08:31 - 유라시아대장정

일본 군대에서 잔학행위나 살인, 생체실험 등을 했던 전범들이 중국 공산단에게 잡혀 수용소에 갇힌 적이 있다. 그때 수용소를 총괄했던 인물이 바로 주은래였다. 그는 전범들을처벌 단속하지 않고, 그들 개개인을 명의 인간으로만나는방법을 택한다.


그는 일본 전범을 철저하게 인간적으로 대하도록 지도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검토해 전범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철저히 조사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들 모두를, 자신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고백하는 데까지 이끌고 갔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마을에 들어가서 그곳의 농민 여성을 어떻게 강간했는지,  체포한 중국 병사를, 생체실험으로 유명한 731부대에 어떻게 보냈고, 생체해부를 어떻게 했으며, 그때 누가 명령을 했고 어느 부대에서 그것이 이루어졌는지를, 만주국의 정책 결정에서부터 일본군의 보급체계까지 조사한것이죠. 일본 전범들은 순수히 고백했는데 순간 대부분 울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중 극히 일부가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 이러한 고백을 거침으로써 일본군이었던 사람들은 자신이 행위를 스스로의 죄로 경험할 있게 됩니다. 그때까지는 자신의 전쟁범죄를 의식 밖으로 제외시켜서 완전히 둔감해질 수가 있었는데 고백의 결과 마음의 상처가 것입니다. 상처가 되었을 그들에게 죄책감은 체면이나 합리화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럴 잇었던 것은 중국의 수용소 사람들이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했기 때문입니다


수용소에서는 국가의 책임뿐 아니라 일본군 개개인이 무엇을 했는지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반성의 결과 생각이 바뀐 사람도 많았는데, 그들이 일본에 돌아가서 무엇을 했냐하면 자신들이 어떻게 일본사회를 개선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중국 사람들에게 사죄할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식민주의적 죄의식은 사회를 바꾸는 노력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자발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인터넷 웹사이트도 있습니다. (사카이 나오키-임지현, “오만과 편견”, 휴머니스트, 2003, 84.


민족주의가 유발하는원한/복수의 악순환 고리와 단절하는 중의 하나가 이러한개별적인 고해의 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내셔널리즘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주체 하나 하나와의 끈질긴 개별적 만남, 그리고 만남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스스로 역경험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


주은래의고해의 축제 그들의 행위 하나하나에개별성 부여함으로써집단적 광기의 수행개별적 행위’/‘개별적 상처,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기억하게 만든 것이다. 얼굴없는 전범의 집단적 폭력에 하나하나의 서로 다른 얼굴을 덧입혀주는 . 그들이 군대의 메커니즘 속에서 단순한 명령복종의 논리로 행했던 전쟁범죄는 그때-거기에서 폭력을 감당했던 사람들 하나하나의 표정과 피눈물과 상처로 되살아나 폭력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이러한 극한경험은 오히려 그들을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자발적 투쟁의 루트로 이끌어나갔다. 이제 집합적 기억이 제도나 역사나 민족의 이름으로 뭉그러뜨린 얼굴 하나씩의 표정을 만나야 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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