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일본 지바현에 위치한 조선학교를 가면서 기대반 걱정반 마음으로 갔다. 아침 알람을 듣지 못하고 그냥 자는 바람에 인천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만 했다. 사실 재일조선인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된것은 2010년 느헤미야서를 읽으면서 부터였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 느헤미야 1:8~9절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조선인들이 꼭 성경의 이스라엘 민족 같았고, 느헤미야처럼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디아스포라청년포럼을 기획하면서 재일조선인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년후 정말 일본의 재일조선인들, 특히 조선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 거리, 나리따공항에 도착하니 지바조선학교 아버지회 회장님이 마중나오시고 지바조선학교 동문인 김박미 자매님이 나와계셨다.
어떻게 할까, 내가 조선에서 왔다고 이야기 할까? 이런 고민을 하는데 함께 동행했던 한국(남조선) 사람들은 그럴 필요 없다고 한다. 괜히 조선을 배반하고 왔다고 경계할수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한다.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모두의 의견을 따라서 절대 고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들 심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내가 부르는 노래 (총련학생들이 설맞이 공연때 항상 부르던 "나라에서 나라에서 돈을 보낼줄은" )를 불렀고, 내 나이 또래 한국 친구들이 전혀 알수 없는 아코디언을 연주했으니....
학교를 들어서는데 낯익은 환영곡 "딴따 딴따 따따다 딴따 따따따 딴따따~~ " 조선에서 환영곡으로 즐겨 쓰는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다음날 운동회 준비를 하던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뛰쳐 나온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다음날 운동회날 공연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유난히 눈이 띈다.
다음날 운동회가 시작되었는데 외부인이 이렇게 남의 학교와서 자기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는걸 보고 학부형들이나 선생님들이 어이가 없었을것 같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마치 고향집에 온것 같은 기분이었다.
장애물 극복경기였는데 옛날에 조선에 있을때는 "붉은청년근위대" 라고 방독면 쓰고 불더미를 통과했었던 경험으로 쏜쌀같이 뛰어갔다.
어렸을때 체육시간에 해보고 처음 뛰어 넘은 목마.
집단체조. 그냥 얼핏보면 집단체조이지만 협동심을 키워주는 좋은 교육인것 같다. 학생들은 몸이 불편한 친구를 서로 챙겨주면서 끝까지 탑을 쌓아 올렸다.
조선학교에서는 선생님들도 학생들과 계주달리기를 한다. 달리기를 보면서 울어보기는 처음인것 같다. 교장선생님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 뒤짐만 지고 권위를 내세우는 교장선생님들과 너무나 다른,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신 김유섭 교장선생님.
아이들이 조국에서 자기들을 보러 왔다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조선에서는 일본을 방문할수가 없다. 일본과 조선은 국교가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조국동포들을 만나려면 꼭 평양을 가야만 한다. 하지만 서울에는 갈수가 없다. 서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울사람들이 이 아이들을 보러오지는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분단으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영화 "봄날의 눈석이 OST" (재일조선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
어렸을때 보았던 총련 관련 영화 "봄날의 눈석이" 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 출연하였던 배우인데 지바조선학교 동문이라고 해서 너무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다. 이분은 영문도 모른채 사진을 찍은듯 하다.
일본에서 있었던 4박 5일간의 이야기를 더 나누겠지만 일단 마지막날 조선학교를 떠나면서 아이들이 우리를 바래주던 모습을 보여주고싶다. 우리가 아무것도 해준것이 없는데 이렇게 반가워할수가 있을까? 이아이들에게 무슨 이념이 있을까? 설사 이념이 있다 하더라도 나와 이념이 다르다 하더라도 나는 계속 만나고 싶다. 왜냐고? 조선민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