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대장정

재일조선인의 국적

2014. 6. 10. 08:04 - 유라시아대장정

1945년에 일본은 전쟁에 패합니다. 일본의 패전은 조선인에게는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일본 신민이었던 조선인의 국적은 해방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전쟁을 한 나라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강화조약으로 정하게 됩니다. 일본 정부의 입장은 구 식민지(대만, 조선) 사람들이 강화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계속 일본 국적을 갖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후인 1947년에 '외국인 등록령'을 발표하면서 조선인은 '당분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강화조약이 아직 체결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그대로 갖고 있었는데, '외국인으로 간주되니, 외국인 등록을 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재일조선인은 일본 국적이면서도 외국인으로 간주되는 모순된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등록에는 '국적란'이 잇는데 이때 조선 반도에는 아직 국가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것은 1948년입니다. 그래서 재일조선인은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썻습니다. 이것은 국적이 아니라 조선 출신이라는 의미, 혹은 조선인이라는 민족을 나타내는 기호입니다. 일본 법무성도 아직 조선 반도에 나라가 없기 때문에 '조선'이란 '외국인 등록상의 기호'라고 했습니다.


외국인 등록법이 발포된 1947년 무렵은, 세계적으로 동서 대립(소비에트 연방 등 사회주의 진영과 미국 둥의 자본주의 진영의 대립)이 격렬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 단계에 잇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진영은 조선이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된 나라가 되는 것을 우려하여 경계했습니다. 

미국 아래에서 자본주의 진영의 일원으로 발을 내딛고 있던 일본은, 일본 국적을 가진 재일조선인이 사회주의 진영 국가가 될지 모르는 조선을 왕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단속하려고 했지만 강화조약 전까지는 재일조선인의 국적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일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하여' 등록시키고, 등록하지 않은 사람은 일본 입국을 금지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1952년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표됩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조선인 대표는 아무도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강화회의에 참가하겠다고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가 반대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한국은 일본이 싸워서 패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강화의 상대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미국도 그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가 열린 1951년은 남북으로 나뉘어 성립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은 1년 전부터 계속된 조선전쟁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북조선은 한국 및 유엔군과 전쟁 중이어서 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에는 물론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재일조선인 대표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 강화조약에는 소련도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 진영이었던 중화민국은 대만으로 옮겨가고, 중국 대륙에는 사회주의 진영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했지만, 그 중화인민공화국도 이 조약에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 패한 일본이 전쟁의 뒤처리를 하는 조약인데, 동서 대립의 영향 때문에 미국과 관계가 깊은 자본주의 진영 나라만이 참가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교전 상태에 있던 모든 나라들과 맺은 전면강화가 아닌, 일부 나라들하고만 체결한 '편면강화'라고도 부릅니다.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조약의 발효와 함께, 구 식민지 출신자는 일본 국적을 상실한다'고 선언합니다. 조선인에게는 아무런 의논도 없었습니다. 조선인의 일본 국적 상실은 샌프란시스코조약 본문에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재일조선인 수십만 명의 법적 지위는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전쟁에서 패한 독일에서는 나치 독일에 병합되었던 오스트리아가 분리되었는데 나치 시대에 독일 국적을 갖고 있던 오스트리아인의 경우, 그대로 독일 국적을 갖고 있든지,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되돌리든지, 각 개인이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과는 전혀 다른 대응 방식입니다.


프랑스의 경우도, 프랑스가 식민지 지배하던 알제리가 독립했을때, 프랑스에 살던 알제리인은 프랑스나 알제리의 국적 중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대영제국이 붕괴해서 영연방 되엇을 때에도, 그때까지 식민지였던 장소게 있던 사람들에게 영연방 시민의 자격이 부여되었습니다. 


재일조선인은 이와 같은 경우는 전혀 없이, 갑자기 일본 국적이 없어져버려서, 어느 나라의 국적도 없이, '조선' 이라는 기호만을 갖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는 형태로, 조선인의 의사에 반해서 일본 국적을 강제했습니다. 그리고 패전으로 식민지 지배가 끝난 후에는, 조선인의 의사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들의 '일본 국적'을 부정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이후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보장 조치조차 없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조선 식민지 지배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방침이 있습니다. 


조선은 일본의 패전으로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었지만, 동서 대립으로 인해 남북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되었기 때문에, 당시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로 조선인에게 준 피해에 대해 제대로 사죄나 해결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둘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재일조선인의 법적 지위나 권리에 매우 나쁜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 많은 문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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